팔도건축기행 (29) 광주 양림동 역사마을 근대 건축물
벽돌·지붕마다 남다른 자태...근대의 시간, 품위 있게 품다
과거 선교사 모여 살던 ‘근대 역사·문화 창고’
회색 벽돌 오웬 기념각·우일선 선교사 사택 등
서양 건축 양식으로 설계, 이국적인 풍광 선사
400년 역사 호랑가시나무 등 고목과 조화 눈길
광주에서 처음으로 서양 근대문물을 받아들인 양림동은 근대문화의 보물창고다. 기독교문화유적, 전통한옥, 근현대 건축물이 어우러진 이 곳은 마을 전체가 커다란 건축역사박물관이기도 하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여러 건축물에서는 여성 국극을 소재로 한 드라마 ‘정년이’ 등 많은 작품이 촬영됐다.
특히 이국적인 풍광의 건물과 400년 역사를 품은 호랑가시나무, 수령을 가늠하기 어려운 웅장한 고목과 매화, 수선화, 철쭉 등 사시사철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는 양림동산 인근은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다. 광주건축가협회는 광주시 남구와 함께 지속적으로 ‘건축가와 함께 하는 양림 건축 기행’을 개최, 양림동을 찾는 이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제공해 왔다.
양림동 근대 건축물 기행의 중심은 기독교 관련 건축물로, 대부분 도보로 이동할 수 있어 산책하듯 즐기면 된다. 1904년 미국 남장로교 소속 선교사인 유진벨(한국명 배유지), 오웬(오기원) 목사 부부가 황량한 양림산에 광주 선교부를 세우고 그해 12월 첫 예배를 드리며 광주 선교역사가 시작됐고 이 과정에서 학교, 병원, 사택 등 다양한 근대 건축물이 들어섰다.

광주시 유형문화재 제26호 오웬 기념각 전경.
◇오웬 기념각= 기독간호대학 안에 위치한 오웬 기념각은 광주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 순교한 오웬과 그의 할아버지 윌리엄을 기념하기 위해 1914년 지은 건물이다. 출입구 대리석 현판에 적힌 ‘IN MEMORY OF WILLIAM L. and CLEMENT C. OWEN’이라는 문구가 이를 잘 보여준다.
건물은 지상 2층 규모로 회색벽돌을 네덜란드식으로 쌓아 벽을 만들고 내부에 나무 기둥을 세워 목재 지붕을 받쳤다. 기단부는 화강석, 지붕틀은 목조 트러스로 구성했고 지붕 재료는 동판을 사용했다. 예배와 집회에 적합하도록 설계된 오웬 기념각은 내부 구조가 흥미롭다. 모서리에 위치한 설교단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 형태에, 바닥은 설교단을 향해 약간 경사가 기울어져 있으며 1층 무대를 향해 완만한 경사를 이룬 2층 객석이 있다.
특히 오웬 기념각은 1920년 광주 최초의 서양음악회인 김필례 피아노 독주회가 열리고 서구식 연극이 공연되는 등 ‘광주 문화의 발상지’, ‘근대 광주문화의 전당’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무엇보다 이 공간이 의미 있는 건 여전히 이곳에서 다양한 문화행사가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2층 객석에 앉아 음악을 듣고 있자면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 광주시 유형문화재 제26호다.

광주시 기념물 제15호 우일선 선교사 사택.
◇우일선 선교사 사택= 아름드리 나무가 인상적인 양림동산 기슭에 서 있는 2층 회색벽돌집이다. 제중병원(현 기독교병원)의 1, 2대 원장을 지냈던 우일선(Wilson)의 사택으로 1911~1927년 사이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광주에 현존하는 서양식 주택으로는 가장 오래된 건물로 꼽히며 광주시 기념물 제15호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미국 남부의 전형적 주택 양식을 따르고 있다. 건물의 평면은 정사각형으로 정면의 포치(Porch·건물에 잇달아 지붕을 대어 지어진 건물의 출입구나 현관)가 눈길을 끈다. 1층에는 거실, 가족실, 다용도실, 부엌 등이 자리하고 있으며 2층에는 침실, 포치 상부에는 선룸을 두었다. 화강석 석축 위에 회색벽돌을 쌓아 지었으며 팔작지붕 형태다. 현재는 호남신학대학 기도실로 이용되고 있다.

국가등록문화유산 제159호 커티스메모리얼홀.
◇커티스메모리얼 홀= 국가등록문화유산 제159호로 지정된 광주 구 수피아여학교 커티스메모리얼홀은 1924년 건립된 회색 벽돌의 2층 건물이다. 전라도 지역 선교의 개척가인 유진벨 목사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공간으로 위층은 선교사와 가족들의 예배당, 아래층은 아동들의 학교로 쓰였다.
인근 대지보다 약 6m가량 높은 언덕 위에 건축됐으며 메모리홀 정면과 측면에는 호랑가시나무가 심겨 있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건물은 회색벽돌을 사용한 네덜란드식 쌓기를 했으며 중앙을 기점으로 대칭을 이룬 형태로, 광주 지역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첨두아치 창호를 사용했다.
박종호 건축사는 석사 학위 논문 ‘광주 양림동 선교지역 근대 건축의 특징에 관한 연구’에서 이 건물에 대해 “아담한 교회 건축물로 좌우 대칭의 고전적인 형태를 취함으로써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정면의 수직성을 강조한 권위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고 평했다. 현재는 수피아여고의 채플실로 쓰인다.

광주 최초의 여성 교육 요람 옛 수피아여고 윈스브로우 홀.
◇윈스브로우 홀= 광주 최초의 지역 여성교육의 요람인 옛 수피아여고에는 다양한 근대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다.1927년 윈스브로우 여사가 받은 생일 헌금으로 건축된 옛 수피아여학교 윈스브로우 홀은 남장로회 선교사 중 건축을 전공한 서로득(Swinehart)이 설계한 건물이다. 좌우 대칭의 중복도형으로 정면 출입구에 아담한 포치와 포치 위 삼각형의 박공지붕, 이를 받치는 투스칸 오더(Tuscan order)의 원형 기둥은 다른 학교 건물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붉은 벽돌 건물로 내부는 조적으로 내력벽을 형성하고 계단 및 슬래브는 콘크리트를 사용해 건립했다. 건물 뒤로 보이는 무등산을 형상화한 듯한 곡선화된 지붕도 인상적이다.
그 밖에 학교 안에는 1911년 지어진 구 수피아여학교 수피아홀(등록문화재 제158호), 수피아 소강당(광주시 문화재자료 제27호)도 자리하고 있다.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풍성한 문화예술 현장인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은 근대 문화유산이 ‘현재’의 시점에서 어떻게 잘 활용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지역 문화 기획 그룹 아트주는 선교사들이 이용하던 붉은 벽돌의 차고지를 개조해 갤러리로 만들고, 유리를 활용한 신축 건물을 이어 붙여 색다른 전시 공간을 탄생시켰다. 아트폴리곤은 바로 앞의 또 다른 재생 공간 글라스폴리곤과 함께 세계적인 문화행사인 광주비엔날레 전시장 등으로 활용되면서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무등산이 보이는 곳에 자리한 원일한·이철선 선교관은 전 세계 작가들이 머무는 호랑가시나무 창작소로, 유수만 선교관은 호랑가시나무 게스트하우스로 활용중이다.
양림동에서 기독교 관련 건축물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장우 가옥, 최승효 가옥, 최승남 가옥 등 전통 한옥과 현대적 매력이 물씬 풍기는 이이남 미술관, 무등산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등 광주 시가지를 내려다볼 수 있는 사직전망타워, 오래된 유치원을 개조한 10년 후 그라운드 등 다양한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다.
양림동 근대 건축기행에서 빠지지 않고 들러야 할 곳이 있다. 미국 남장로 선교사들과 그 가족들이 잠들어 있는 선교사 묘역이다. 꼭 신자가 아니더라도 이곳을 찾게 되면, 누구나 희생과 나눔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된다.
광주일보 글= 김미은 기자·사진= 최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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