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의료사고 의사 과실 판결 논란
“과실책임 물으면 소극 진료” VS “의료분쟁 해결 제도 필요”
환자 치료 중 과실이 발생한 의사에게 손해 배상금 지급을 명하거나 형벌을 내리는 등 법원의 판결을 두고 의료계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선의의 의료행위 중 과실에 책임을 물으면 소극 진료나 중증·필수의료 외면 등으로 되레 환자 피해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의료 공백’ 사태 이후 의료인의 사법 부담을 완화하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이슈가 부각되고 있다.
의료계
범죄자 취급에 중증필수의료 기피
의사 최선 다하도록 법적보호 절실
환자단체
피해자 의견 적극 반영 구조 없이
의료인 형사처벌 면제 논의 반대

자료사진./픽사베이/
◇“폭력 가해자와 의사가 공범인가?”= 경상남도의사회 등 16개 광역시도의사회장 협의회는 12일 성명서를 내고 최근 광주고등법원에서 의사의 과실 책임을 물은 판결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의료·법조계에 따르면, 사망한 피해자 A씨는 지난 2017년 10월 남자친구에게 밀려 넘어지면서 머리를 크게 다쳐 경막외출혈 등을 입었다. 이에 대학 병원으로 이송돼 혈종 제거 수술을 받기로 했으나 중심정맥관을 삽입하는 과정에서 동맥을 관통하는 의료사고로 숨졌다. 해당 법원 제3민사부는 사망 책임에 숙련되지 않은 전공의의 과실이 인정된다며 의료진과 병원, 폭력 가해자가 공동으로 손해배상금 약 4억4000만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 판결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의료계에선 대한응급의학의사회가 11일 성명을 내는 등 반발이 이어졌다.
협의회는 “응급 상황에서 필요한 위험천만한 고난도의 처치를 하다가 실수를 한 의사를 범죄인으로 처벌한다면 도대체 어떤 의사가 중증필수의료를 전공하겠는가”라며 “환자를 살리고자 하는 선의의 의료 행위 중 발생하는 의사의 과실에 대해 형사 처벌을 면하게 하자는 내용의 의료사고특례법은 의사를 위해서만 만들고자 하는 법이 아니다. 의사가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법률이 제정돼야만 필수중증의료 인력 부족 문제가 해결되고 응급실 뺑뺑이도 해결될 것임을 왜 모르는가”라고 주장했다.
◇의사 과실 논란 지속…때론 판사 ‘비난’도= 지난해 6월 임현택 당시 대한의사협회장이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된 의사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창원지방법원 판사를 두고 반발, 자신의 SNS에 판사의 이름과 사진을 공개 비판했다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 임 전 회장은 “환자 치료한 의사한테 결과가 나쁘다고 금고 10개월에 집유(집행유예) 2년이요?”라며 판사를 비난했다. 당시 기소된 60대 의사는 80대 파킨슨병 진단 환자 B씨에게 맥페란 주사액(2㎖)을 투여해 부작용으로 전신 쇠약과 발음장애, 파킨슨병 악화 등의 상해를 입힌 혐의를 받았다.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환자의 기왕력(병력)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과실로 인해 상해의 결과가 발생했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이에 의사는 업무상 과실을 인정할 수 없다며 항소했고 검찰도 양형부당으로 각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는 양측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의료계는 의사들에 대한 사법 리스크의 부작용으로 지난 2017년 서울 양천구의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신생아 4명이 연달아 심정지가 발생한 사건을 대표적인 사례로 든다. 이 사건 관련 의료진은 오염된 주사기를 맞혀 패혈증으로 사망케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해당 사건은 5년의 법정 공방 끝에 입증 부족을 이유로 최종 무죄를 판결했다. 의료계는 이 사건이 소아청소년과 기피 현상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한다.
◇정부 검토 지속…환자단체연합회선 반대 밝히기도= 정부는 의료개혁 과제 중 하나로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을 추진해 왔다. 의료사고로부터 환자가 충분히 보상받고, 의사는 진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현행 의료분쟁 중재·조정 제도를 개선하고,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을 완화하는 필수의료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를 추진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달 16일 의료사고안전망 전문위원회 제16차 회의를 열고 △의료사고 배상보험·공제체계 개선 방향 △의료사고 특화 사법 체계 구축방안 등 논의를 진행했다.
환자단체의 입장은 이와 다르다. 지난해 11월 환자단체연합회는 성명을 통해 “환자와 국민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거버넌스 구조로 만들지 않은 상태에서 의료계의 핵심 요구사항인 의료사고 관련 의료인 형사소추 및 형사처벌 면제 논의를 하는 것에 강력히 반대한다”며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족은 의료행위의 고도의 전문성 및 은밀성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의료인의 과실과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 중대한 과실에 대해 의료인의 책임을 묻기 어려운 구조 속에 놓여 있다. 의료인과 환자 모두를 위한 의료사고 안전망을 구축하고자 한다면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을 제정할 것이 아니라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족이 의료인을 대상으로 형사고소를 하지 않고 의료분쟁을 해결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입법적·제도적 개혁부터 우선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재경 기자 j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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