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전통시장의 미래, 건축 혁신에서 찾다] (4) 스페인 바르셀로나 엔칸츠 벼룩시장

25m 황금빛 지붕 아래 과거·현재 공존하는 시장

기사입력 : 2024-11-21 20:47:26

14세기 성벽 야외서 시작
‘글로리스 광장’으로 옮겨
매주 건물 없는 공터에
비닐천막 점포 등 장 이뤄

시, 2008년 리노베이션 추진
야외시장 형태 살려 현대화
다양한 경사로 공간감 높여
노점상·현대적 상점 입점
바르셀로나 대표적 명소로


오래된 서적, 가구, 옛 그릇 등 골동품이 가득한 스페인의 과거가 한 곳에 모인 시장. 스페인 바르셀로나 엔칸츠 벼룩시장은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14세기 성벽 근처에서 시작한 이 시장은 리노베이션을 거쳐 오랜 역사의 야외적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이고 기능을 갖춘 공간으로 재탄생하며, 지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한편 바르셀로나는 1992년부터 시장과 관련된 정책이 생겨나게 되면서 시장을 위한 기관이 시청에서 따로 빠져나와 운영되고 있다. 그들은 ‘시장은 지역의 영혼이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바르셀로나 시장 활성화를 위한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관 관계자를 만나 시장 건축 혁신에 대한 중요성을 들어보고 경남 전통시장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나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엔칸츠 벼룩시장 과거./바르셀로나 시·엔칸츠 벼룩시장 책/
스페인 바르셀로나 엔칸츠 벼룩시장 과거./바르셀로나 시/
스페인 바르셀로나 엔칸츠 시장 현재 모습. 1층은 벼룩시장 형태의 노점상이, 2층에는 현대적인 상점들이 자리 잡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태어났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엔칸츠 시장 현재 모습. 1층은 벼룩시장 형태의 노점상이, 2층에는 현대적인 상점들이 자리 잡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태어났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야외 시장=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 중 하나인 엔칸츠 벼룩시장의 기원은 13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바르셀로나 성벽 관문을 따라 야외에서 정기적으로 중고품을 판매하던 시장이었다.

엔칸츠 시장의 위치는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차례 바뀌다, 1929년 국제 박람회를 앞두고 글로리스 광장 주변으로 옮겨 운영됐다. 건물 없이 공터에 매주 500개의 노점이 모였고, 비닐천막을 두른 작은 점포들이 장을 이루고 있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엔칸츠 벼룩시장 과거./바르셀로나 시·엔칸츠 벼룩시장 책/
스페인 바르셀로나 엔칸츠 벼룩시장 과거./바르셀로나 시/

2008년 바르셀로나 시는 엔칸츠 벼룩시장의 △노후화된 시설 개선 △공공공간 및 경제 활성화 △환경 및 도시 재생 △국제적인 명소로의 변모를 위해 현대화하기로 결정한다.

공모를 통해 페르민 바스케스의 b720이 설계를 맡게 됐으며, 새로운 시장 건물은 글로리스 광장 바로 앞으로 이동해 지어지면서 2013년 현재 엔칸츠 벼룩시장 형태를 갖추게 됐다.

◇역사적 형태 유지하면서도 현대적·기능적인 공간으로 변신= 엔칸츠 벼룩시장은 현대화 과정에서 야외 시장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이고 체계적인 기능을 갖춘 공간으로 전환됐다.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25m에 달하는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의 황금빛 지붕이다. 이를 통해 사방이 열려 있으면서도 강렬한 햇빛으로부터 상인들과 방문객들을 보호한다. 지붕 밑면은 기하학과 다양한 경사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통해 시장이 반사되면서 공간의 확장감은 배가 된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엔칸츠 벼룩시장.
스페인 바르셀로나 엔칸츠 벼룩시장.
스페인 바르셀로나 엔칸츠 벼룩시장./한유진 기자/
스페인 바르셀로나 엔칸츠 벼룩시장./한유진 기자/

시장 편의를 위한 공간도 다채롭게 구축됐다. 1층에는 오래된 골동품, 서적, 가구, 옷, 장식품 등을 파는 벼룩시장 형태의 노점상이, 2층에는 현대적인 상점들이 위치해 과거와 현재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또한 3층에는 카페와 식당, 전망대가 있어 시장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또 지하에는 물류 창고와 공공 주차장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현대화 노력을 통해 엔칸츠 벼룩시장은 바르셀로나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하게 됐고, 지역 경제 활성화와 도시 재생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시장은 주변 상권을 활성화시키는 중심축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엔칸츠 벼룩시장 리노베이션은 시장 주변 지역의 도시 재개발을 촉진했다. 또한 도로가 재포장되고, 공공 공간이 개선됐으며, 주변 상점들도 유입된 덕분에 경제적 파급효과도 발생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엔칸츠 벼룩시장./한유진 기자/
스페인 바르셀로나 엔칸츠 벼룩시장./한유진 기자/


/인터뷰/ ‘경남 전통시장 생존 해법’ 내놓은 막심 로페스 만레사 시립 시장 연구소장

“건축으로 정체성 살리고 문화공간으로 거듭나야”

막심 로페스 만레사 시립 시장 연구소장(Màxim López Manresa, Manager of the Municipal Institute of Markets).
막심 로페스 만레사 시립 시장 연구소장(Màxim López Manresa, Manager of the Municipal Institute of Markets).

-각 시장마다 독특한 건축 경관이 인상적이다. 시장 리노베이션 과정에서 중요한 건 무엇이었나?

시장은 역사적으로 지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사람들이 먹고사는 건 늘 있었던 일이지만, 40~50년 전부터 식료품에 대한 유통이 화두가 됐다.

우리는 ‘유통을 강화하기 위해서 차별성 있는 혁신적인 걸 뭘 해야 될까’라는 고민을 통해 시장들을 계속 변화시켜 왔다. 이 과정에서 저희가 중점으로 둔 게 ‘우리 시장이 지닌 역사적 의미는 잃지 않는 것’이었다.

기존에 있는 건축물들을 활용하고 거기에 현대성을 가미하는 방식으로 시장 리노베이션을 진행했다.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는 경우에도 굉장히 독특하고 유니크하게 만드는 데 중점을 뒀다. 그러면서도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과 비교해서 편의시설이 떨어지지 않게끔 갖춰 방문객들을 끌어들이는 데도 신경을 썼다.

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러 가는 곳을 넘어,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서 바뀌고 있다. 훌륭한 건축물뿐만 아니라 시장은 차별성 있는 제품, 다양한 제품군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이 지역에 살면서 내가 살고 있는 전통시장에 대한 자긍심을 불어 넣는 게 중요하다. 바르셀로나 시장은 항상 혁신과 함께한다.

-전통시장 활성화에 있어 건축의 중요성은? 

경남지역 전통시장은 천편일률적 아케이드 설치, 간판 개·보수 등 기능적 개선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건축 디자인은 단순히 미적 요소를 넘어 사용자의 경험과 시장의 활력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산타 카테리나 시장과 엔칸츠 벼룩시장의 경우, 현대적인 요소와 전통적인 형태를 신중하게 통합해 기능적 개선뿐만 아니라 고객과 상인 모두에게 매력적인 공간을 만들어냈다. 세라믹, 스테인리스 지붕과 목재 구조물 같은 독특한 특징은 시장의 정체성에 가치를 더하며,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를 넘어 지역 사회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단순히 간판이나 아케이드의 기능적 개선에만 중점을 둘 경우 시장의 문화적, 건축적 정체성을 잃을 위험이 있다. 대신 현대적 요구와 역사적 가치를 결합한 강력한 건축적 비전을 통합한다면 전통 시장을 상업적으로 성공적이고, 문화적으로도 중요한 공간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

-쇠락하는 경남 전통시장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시장의 역할, 기본에 충실해야 된다. 시장의 전통과 가치를 무시한 채 단순하게 수익성을 좇아 시장을 없애거나 주상복합 등 다른 용도로 변경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시장은 한 지역의 영혼이다.

시장이 기본 역할에 충실하지 못한다면, 지역경제를 이끌어가는 원동력도 없어질 것이고, 지역의 영혼도 사라질 것이다. 또한 사람들이 커뮤니티할 수 있는 소통의 공간도 사라지면서, 사회통합이 이뤄지지 못하기 때문에 시장 리모델링을 할 때는 이런 모든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또한 시장은 더 이상 물건 사고파는 공간만이 아니라 문화센터, 도서관 같은 문화적인 공간으로, 그런 자원으로서의 하나로 인식되어야 한다.

글·사진= 한유진 기자 jinny@knnews.co.kr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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