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더 큰 미래로!] 광복 80주년… ‘독립운동 중심’ 경남

도내 ‘숨은 독립운동가’ 1762명… 잊힌 공적 발굴해 인정 필요

기사입력 : 2025-01-01 20:54:08

‘미서훈 독립운동가’ 찾는 경남도

7명 구성 독립단체 ‘창원 흑우연맹’
출옥 후 숨진 박창오씨만 서훈 받아
부산지법 마산지청 판결문 등 확보
나머지 6명 작년 국가보훈부에 신청


‘독립운동 인정’ 근거 찾으려면

1274명 중 720명만 ‘3·1운동 서훈’
“판결문·처형기록 등 자료 소실 탓
유공자 인정 못 받아 신문서 찾아야”
정부, 오는 8월 52명 공적 심사 예정


일제강점기, 경남에는 대한민국 독립을 바라는 목소리로 뜨거웠다. 3·1운동, 의열단 활동까지 경남은 독립운동 중심지였다. 하지만 아직 도내 미서훈 독립운동가 수는 1700여명이 넘는다. 이들은 목숨 걸고 독립운동했지만 관련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서훈을 받지 못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재조명이 꼭 필요하다. 2025년은 광복 80주년과 한일 수교 60주년 해이다. 과거를 넘어 미래로 나아가는 방향성을 설계해야 한다. 경남신문은 ‘더 큰 미래로’로 향하는 경남을 위해 광복 80주년 의미를 조명하고자 한다.

2023년 4월 3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에서 열린 4·3독립만세운동 삼진연합대의거 재현행사에서 참가자들이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경남신문 DB/
2023년 4월 3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에서 열린 4·3독립만세운동 삼진연합대의거 재현행사에서 참가자들이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경남신문 DB/

◇경남, 독립운동 중심지= 1919년 3월 9일 정오께 함안군 칠북면 연개장터에 100여명의 군중이 모였다.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 이령교회 장로 김세민 선생이 대회사를 한 뒤 그의 큰아들 김정오 선생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이는 경남 독립운동 시작을 알리는 포문이었다.

낭독이 끝난 이후 지역 유지와 경명학교 학생들은 선두에 서서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를 따르는 군중들은 영서, 영동, 상봉촌, 하봉촌을 돌면서 해가 저물 때까지 만세를 부른 뒤 해산했다. 만세운동에 참여한 이들은 3일 후 대산 평림장날 만세운동을 주도했고, 이는 영산의거와 밀양의거로 이어졌다.

경남 전역으로 퍼진 만세운동은 1274명의 순국자가 발생했다. 지역별로는 창원 320명, 함안 227명, 합천 184명, 사천 120명, 밀양 105명 등이다. 전국에서 100명 이상 순국자가 발생한 지역 19곳 중 경남이 5곳이 포함됐을 정도로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만세운동 이후 1919년 11월 밀양 출신 김원봉 장군 주도로 중국 지린성에서 의열단이 결성된다. 의열단은 주로 일본 고위층에 대한 암살 활동이나 주요 시설을 파괴하며 무장 독립을 벌였다. 특히 창단 발기인 13명 중 밀양 출신이 5명이기에 경남과 연관도 크다.

의열단은 부산경찰서, 밀양경찰서, 조선총독부 청사 등을 폭파하고, 일본 고위 관료를 암살하는 등 무장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자금 부족과 사상적 다툼 등 이유로 1928년 해체되어 개별 활동을 이어갔다.

박형인 광복회 경남지부장은 “경남은 일본인이 많이 거주했고, 일제의 수탈이 심했던 곳 중 하나이다. 또한 일본과도 가까웠기에 경남도민들의 고통은 컸다”며 “마산항 같은 개항장을 통해 상업 등 많은 부분에서 약탈이 이뤄졌다. 이 때문에 민족적 반감이 컸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흑우연맹 주동자인 조병기 선생이 재판기록 등을 공개한 1974년 11월 28일자 경남매일(경남신문 전신) 지면./경남신문 DB/
흑우연맹 주동자인 조병기 선생이 재판기록 등을 공개한 1974년 11월 28일자 경남매일(경남신문 전신) 지면./경남신문 DB/

◇목숨 바친 독립운동가 끝까지 찾아내야= 경남에는 잊힌 독립운동가 발굴 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 중 잊힌 독립운동 단체인 ‘창원 흑우연맹’이 재조명되고 있다. 국가권력인 일제에 저항하는 ‘아나키즘’ 성향이 있는 창원 흑우 연맹은 1928년 5월 결성됐다. 조병기(趙秉基)·손조동(孫助同)·김두석(金斗錫)·박순오(朴順五)·박창오(朴昌五)·김두봉(金斗鳳)·김상대(金相大) 선생 등 7인이 중심이 됐다.

이들 비밀결사체는 독서구락부를 조직해 아나키즘 이론을 연구하며 창원 지역에 항일독립운동사상을 선전해 오던 중 1년 뒤인 1929년 5월 검거돼 9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이 과정에서 심한 고문을 받은 박창오·박순오 선생은 출옥하자마자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적용된 혐의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이들끼리 상해임시정부 현황을 이야기하던 편지가 적발됐다. 투옥 4개월 뒤 열린 예심에서는 증거불충분으로 면소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담당 검사가 판결에 불복, 항고하면서 투옥 기한이 연장됐다. 참가자인 조병기 선생은 1920년대 창원공립보통학교와 합천초계공립보통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면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과 항일사상을 고취하는 교육에 힘쓰다 파면 처분을 받았다. 이후 조선일보 지국 기자로 활동했지만, 독립 유공자 신청을 끝내 하지 못했다. 또 다른 주동자인 김상대 선생은 2002년 가족이 독립 유공자 신청을 했지만 공적 심사에서 탈락했다. 당시 언론 자료와 조선총독부 부산지방법원 예심종결결정서 등 관계 증빙자료만으로는 부족했다. 출옥 직후 숨진 박창오 선생만 2023년이 되어서야 독립운동가로 서훈됐다.

2023년 제78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창원광장에 창원 출신 독립운동가 186명의 이름이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경남신문 DB/
2023년 제78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창원광장에 창원 출신 독립운동가 186명의 이름이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경남신문 DB/

경남도는 2024년 국가보훈부에 박창오 선생을 제외한 흑우 연맹 6인에 대해 독립 유공자 서훈 신청을 했다. 도는 이들의 독립운동 활동을 입증하기 위해 1929년 당시 창원 흑우연맹 사건을 다룬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 ‘판결문’과 ‘집행원부’를 확보해 공적서를 작성했다.

경남 출신 독립 유공자는 1428명(2023년 8월 기준)이다. 문제는 창원 흑우연맹 같은 아직 미서훈 독립운동가가 남아 있다는 점이다. 경남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도내 미서훈 독립운동가 수는 1762명이다. 이들은 독립운동을 했지만 관련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서훈되지 못했다. 경남은 기미년 독립만세의거(3·1운동) 당시 집회가 135회 벌어져 1274명이 순국했지만 3·1운동 관련 서훈된 독립운동가는 720명에 불과하다.

도는 이 같은 미서훈 독립운동가를 발굴해 지금까지 76명의 서훈을 신청했다. 지난해 서훈을 신청한 독립운동가 중 52명은 오는 8월 공적 심사 예정이다.

도내 독립운동가 서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은 관련 자료가 많이 소실됐기 때문이다. 1949년 10월 27일 판결문, 처형기록 등이 보관 중이던 진주법원에 불이 나는 사고가 발생했다.

박형인 지부장은 “독립 유공자의 공적 자료 중 핵심인 판결문이 사라져 유공자로 인정받기까지 난항을 겪고 있다”며 “당시 신문 자료 등을 통해 목숨 걸고 독립운동한 이들을 찾아내고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3년 3월 3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원시립마산박물관 앞에서 3·3 추산정 만세의거 104주년 기념 제3회 성호만세 축제에서 의신여중 학생 등 참가자들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후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경남신문 DB/
2023년 3월 3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원시립마산박물관 앞에서 3·3 추산정 만세의거 104주년 기념 제3회 성호만세 축제에서 의신여중 학생 등 참가자들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후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경남신문 DB/


/인터뷰/ 정성기 경남대 K-민주주의 연구소장에 ‘경남의 방향성’을 듣다

“편협한 ‘보수-진보’ 진영논리 벗어나게 하는 사회 역사교육 시급”

정성기 경남대 K-민주주의 연구소장./김승권 기자/
정성기 경남대 K-민주주의 연구소장./김승권 기자/

경남은 대한민국 현대사 축소판 같다. 광복 후 재건과 산업화, 민주화를 이끄는 중심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최근 명태균 게이트, 12·3 계엄 사태 등으로 경남뿐 아니라 대한민국이 위기에 직면했다. 본지는 광복 80년 의미를 통해 더 큰 미래로 가는 경남의 방향성을 듣고자 정성기 경남대 K-민주주의 연구소장을 만났다.

-새해는 광복 80주년과 한일 국교 수립 60주년이다. 경남도민들이 어떤 의미를 갖고 새해를 맞았으면 하는가.

식민지에서 벗어나 선진국으로 진입한 성과에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온전한 ‘통일독립선진국’이 되기에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경남은 이 나라 호국과 산업화, 민주화의 중심지답게 저력을 발휘해서 거듭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나라가 해방 후만큼이나 이념 대립이 격심하고, 구한말처럼 국제적으로 위태롭다는 냉철한 현실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경남의 정신’이 새로워지고, 낡은 경남의 생활양식이 획기적으로 변화해야 ‘21세기 선진·통일 한국을 일구어가는 경남’의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혼란스러운 정국 속 독립운동가들에게 어떤 지혜를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해방 후 남북분단은 미국, 소련 강대국 탓 이전에 독립운동 과정 속 좌우 내분으로 항일 민족해방투쟁을 제대로 못 한 결과이다. 이 대립은 해방 후 80년이 지나 지금까지 이어졌다. 독립운동가 중에서 세계적으로 드물게 ‘거짓 없는 인간’을 양성한 탁월한 교육자이자 좌우를 아우르는 점진적 개혁가, 혁명가, 나아가 대공주의(大公主義)-세계 평화주의자의 다양한 면모가 재조명되고 있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가르침은 시간이 지날수록 재조명된다. 그의 철학을 다시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의미가 큰 새해인 만큼 국가의 역할이 중요해보인다. 이에 대한 견해를 부탁 드린다.

1979년 부마항쟁 때와 달리 5·18민주화운동 이후 혼란스러워진 대한민국 국가관, 국가 정당성 문제와 관련된 ‘현재의 과거사 인식’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역사 전쟁과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이승만 정권 독재는 용서받기 힘든 범죄적 과오를 남겼지만, 자유민주주의 헌법 질서 기반 대한민국 정부를 세우고, 6·25전쟁을 겪으며 나라를 지켰다는 양면성을 상호 인정해야 한다.

일본과 관계의 경우, 일제 지배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는 반일 자세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1965년 한일 국교 수립 이후 일본과 경제 협력하는 ‘신친일’의 순기능 덕분에 포항제철, 마산수출자유지역, 창원기계-방위 산단 등의 ‘K-제조업’, 나아가 남북한 체제경쟁의 승리가 가능했다는 양면성이 있다. 그 이전에 북한은 소비에트, 중국 등 외세를 등에 업은 침략으로 전후 폐허의 일본을 부흥시켜 줬다. 한미일을 포함한 전 세계 반공연대 강화의 조건을 만들어주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더 큰 미래로 도약하는 경남’을 위해서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가.

오늘날 인류는 우주항공 시대를 살고 있고, 한국의 우주항공 시대 중심이 경남이다. 지구 차원의 지정학적 시야, 나아가 탈근대의 우주적 시야에서 세계 속 한국-경남을 보는 안목이 넓어져야 한다. 거리의 민주화 역량을 ‘일상생활의 K-민주역량’으로 바꾸는 데 관산학, 노사민정 모두 진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각계의 보수, 진보진영 지도층부터 ‘대한민국의 보수, 진보’임을 자각하고, 상대에 대한 부정, 적대를 넘어서 상대의 장점과 자신의 약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당장은 편협한 ‘보수-진보’ 진영논리의 경남-한국 역사관에서 벗어나게 하는 사회 역사교육이 시급하다.

다행히 경남에는 좋은 교육자료가 만들어졌다. 2020년 처음으로 발간된 경상남도사 현대사(5권)는 대한민국 정부 정당성 인정을 시작으로 6·25 전쟁 과정 민간인 학살 인정 등 상당히 좌우 균형 잡힌 한국-경남 현대사 인식을 보여주고 있어서 그 보급판 발행 등이 필요하다고 최근 경남의 민주주의 관련 대학 6개 연구소가 경남도에 공동 건의한 바 있다. 한국 현대사의 축소판인 경남 현대사는 K-문화·관광의 좋은 콘텐츠이기도 하다. 도 집행부와 의회, 언론, 교육계의 깊은 관심을 기대한다.

박준혁 기자 pjhnh@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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