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못한 노동자 56명… ‘책임 묻는 법’ 없인 안전도 없다
[2025 더 큰 미래로!] 중대재해 없는 경남 안전한 일터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처법)이 시행된 지 오는 27일로 3년이 된다.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가 안전 확보 의무를 소홀히 해 중대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때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 재해를 예방한다는 것이 중처법의 입법 취지다. 하지만 여전히 경남지역에서는 노동자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더 이상 중대재해 없는 안전한 일터를 위해 지난 3년을 짚어보고 방안을 모색해 본다.

창원시 성산구 대원동 창원복합문화센터 1층 현관에 창원국가산단 입주 업체의 안전모가 진열되어 있다./김승권 기자/
도내 산업재해 현황
작년 11월 기준 사망건수 52건
업종별, 제조업 23건 가장 많아
발생요인, 떨어짐·맞음·깔림 순
김해 7명… 2년 새 2배 증가
조선소 밀집 ‘거제’ 21명 최다
◇중대재해가 앗아간 가장…무너진 유족의 삶= 2024년 8월 2일 오후 1시께 박지영(54·가명)씨는 진주의 한 가게에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날 박씨는 북적이는 손님들을 맞이하느라 분주했다. 그러다 오후 1시가 조금 넘어 친정어머니의 연락을 받았다. 어머니는 다급한 목소리로 남편의 회사에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며 한 연락처를 불러줬다. 곧장 전화를 거니 회사 직원이 받았다. 직원은 “남편이 타고 있던 차가 굴러떨어져서 현장에서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박씨는 가게 문을 잠그고 그대로 주저앉아 30분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정신을 차리고 가족들에게 사고 소식을 전한 뒤 다시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남편의 시신을 사고 현장인 사천에서 진주의 한 장례식장으로 옮기려 한다고 했다. 박씨는 친정어머니, 친동생과 함께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사고 다음 날인 8월 3일께 진행된 남편의 입관식을 박씨는 차마 보지 못했다. 박씨의 친동생은 박씨에게 장례지도사가 ‘고인의 얼굴 형체가 없어서 염(殮)을 할 때 너무 힘들었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얼굴 형체가 없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의아했지만, 경황이 없었다. 박씨는 남편 발인 절차를 끝내고 화장을 진행했다.
남편과 영원히 작별한 박씨는 사고 발생 사흘만인 8월 5일 처음으로 사고 현장을 찾았다. 수사를 맡은 사천경찰서 경찰은 탑승자 부주의로 일어난 단순 교통사고라고 설명했다. 탑승자 2명 모두 숨졌기 때문에 사건을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한다는 것이다. 남편은 조수석에 타고 있었다.
단순 교통사고로 끝날 뻔한 남편의 사망 사건은 박씨가 남편의 휴대전화 CCTV 앱에 담긴 사고 당일 영상을 발견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외부충격이 의심된다’는 남편 친구들의 이야기에 아들(28), 딸(23)과 함께 열어본 남편의 휴대전화 CCTV 영상에 사고 당시 차량 인근에서 발파작업이 이뤄진 장면이 담긴 것이다. 박씨와 자녀들은 발파와 사고의 연관성을 확인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경찰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사건은 사천경찰서에서 경남경찰청에 이관된 뒤에야 전말이 드러났다. 조사 결과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은 발파 작업에 따른 산재로 밝혀졌다. 부실한 안전관리도 드러났다. 사고 당시 파편이 튀는 걸 막는 안전 매트가 없었고, 발파 전 경고 방송과 안내판 설치 등도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경찰은 남편이 다니는 회사의 발파팀장을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가장을 잃은 유족의 삶은 무너졌다. 박지영씨는 현재 삶의 터전인 진주를 떠나 서울에서 지내며 정신과 치료와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 사고 발생 6개월 전 교사 임용시험에 합격한 아들은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온전히 느낄 새도 없이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박씨는 “사고 당시 통화했던 직원들의 음성 같은 게 하루에도 수백 번 귀에 맴돈다”며 “생계도 다 무너졌고, 지금 당장도 이렇게 힘든데 사건이 완전히 끝나려면 앞으로 3~4년은 더 걸릴 거라고 하니 그때까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실질적인 경영 책임자가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씨는 “발파팀장이 모든 죄를 다 뒤집어쓰는 꼬리자르기는 절대 안 된다”며 “수사가 지연될수록 너무 힘들다. 실질적 경영 책임자가 빨리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중대재해법 시행 3년
도내 법 위반 적용 사건 61건
이 중 실형 선고는 3건 불과
대부분 ‘안전조치 불이행’ 때문
경영책임자 안전수칙 준수 필요
사법부 수사·처벌도 이뤄져야
◇중처법 시행 3년, 중대재해 사망자 전년 대비 27% 늘어= 산재 사망은 ‘사고’와 ‘질병’으로 나뉜다. 본지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정혜경 진보당 의원실을 통해 받은 ‘최근 10년 경남지역 산업재해 현황(근로복지공단 산재승인 데이터 기준)’에 따르면, 2015~2018년 경남지역 산재 사망자는 130명 안팎을 기록했다. 2019년(108명) 최저치를 기록한 뒤 꾸준히 늘어 2021년 153명으로 최고치를 찍었다. 그러다 중처법이 시행된 2022년 134명, 2023년 124명으로 줄고 있다.
2024년 산재 사망자는 9월 기준 110명으로, 향후 집계될 4분기(2024년 10~12월) 통계에 따라 전년보다 적거나 비슷한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산재 통계는 해당 사고가 산재로 인정받고 유족급여가 지급된 날을 기준으로 산출되기 때문에 지난해 사망했더라도 올해 사망자로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2022년 1월 27일 중처법 시행 이후 중대재해 ‘사고 발생 시점’을 기준으로 집계하는 통계를 보면 올해의 경우 전년 대비 사망자가 크게 늘었다. 이는 산재 사망사고 중 사업주의 ‘법 위반 없음’이 명백한 경우를 제외하고 집계된다.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창원·진주·통영·양산 지청에 따르면, 지난해 경남지역 중대재해 사망자와 사망건수는 각 56명·52건(11월 말 기준)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간(44명·42건)보다 각 27%, 19% 증가한 수치로, 중처법 시행 첫해인 2022년 동기간(57명·56건)과 비교하면 사망자는 비슷한 수준이나 건수는 7% 줄었다. 지난해 중대재해가 전년 대비 늘어난 데는 잇따른 조선소 사고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발생한 52건의 중대재해 사망 사건을 업종별로 보면 제조업이 23건으로 가장 많았고, 건설업(17건)이 뒤를 이었다. 발생 요인별로는 기타 19건을 제외하면 떨어짐(13건)이 가장 많았고, 맞음(8건), 깔림(6건), 폭발(4건), 끼임·충돌(각 1건) 순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김해시의 사망자 수가 큰 폭으로 늘었다. 지난해 김해시의 중대재해 사망자 수는 7명(11월 기준)으로 2022년 동기 4명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업종별로는 총 7건 중 제조업 5건, 건설업 2건. 발생 요인별로는 떨어짐·깔림 각 2건, 끼임·맞음·폭발 각 1건이었다. 이는 대표적인 ‘후진적 안전사고’로 분류된다.
특히 지난해 조선소가 밀집한 거제에서 사망자 21명이 발생해 가장 많은 사망자 수를 기록했다. 이는 작년에만 중대재해 3건이 연달아 발생한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사고와 지난 4월 거제의 한 수리 조선소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 등 조선소 사고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엄격 신속한 처벌·기본 안전수칙 준수”= 이처럼 중처법 시행 이후에도 경남에서 여전히 한해 50명 안팎이 중대재해로 일터에서 목숨을 잃지만 중처법으로 기소돼 처벌받은 사례는 많지 않다. 법 시행 이후 3년여간 경남지역의 중처법 위반 적용 대상 사건은 61건(11월 기준)으로, 이 중 실형이 선고된 사건은 3건에 불과하다. 이곳 사업장은 과거 산업재해가 발생했거나, 지적된 안전 조치를 이행하지 않아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에 중대재해 없는 안전한 일터를 위해선 경영 책임자의 기본적인 안전수칙 준수와 함께 사법부의 엄격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병훈 민주노총 경남본부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중처법도 이제 4년 차에 접어드는데 결국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니 사고가 줄지 않는 것”이라며 “위반 행위가 명확하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하거나 사전 압수수색을 하는 등 적극 수사와 처벌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형수 금속노조 경남본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지회장은 “노동자가 안전조치가 제대로 돼 있지 않은 작업장에 들어가면서도 불안정한 고용 구조 탓에 쉽사리 거부할 수 없다 보니 사고가 발생한다”며 “현장 안전 문제와 직결되는 고용 구조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창원지청 광역중대재해수사과의 한 근로감독관은 “대부분의 사건 사고들은 기존에 적용되고 있던 산업안전보건법의 규칙을 잘 지키지 않아서 발생하는데, 이는 현장에서 조금만 신경 쓰면 지킬 수 있는 것”이라며 “경영 책임자들이 규칙을 제대로 준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태형 기자 th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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