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79주년- 최저임금 인상 딜레마] 인상 쓴 임금, 체면 구겼다
최저임금 ‘1만30원’. 금이라 불리던 시간에 대한 최소 값어치가 2025년 1만원을 넘겼다. 1988년 최저임금 제도가 도입된 지 37년 만에 일어난 상징적인 순간이다. ‘1만원’이란 심리적 저지선이 무너지자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반응은 어느 때보다 격하다. 반대편에는 전년 대비 인상률이 1.7%로 역대 두 번째로 낮아 아쉽다는 의견도 나온다. 2025년 경남신문 월 구독료는 1만원이다. 2008년 8000원에서 1만원으로 올린 이후 17년간 동결이다. 1시간 노동이면 신문 구독이 가능해진 2025년. 79주년 창간을 맞아 다양한 관점으로 최저임금에 대해 논해 본다.

꾸준히 올랐지만…
1988년 462.5원부터 시작
37년 만에 ‘1만원’ 넘어
인상률, 역대 두 번째 최저
◇‘세 번째 파도’에서 시작된 변화= “한 시간에 1만원 이상 팔기도 힘든데 어떻게 야간 아르바이트를 쓰겠어요.(한숨)” 김해 장유 유흥가 외곽의 한 편의점. 이곳 점주 A씨는 새벽 1시가 되면 영업을 종료한다. 불경기 속 야간근로수당까지 포함된 인건비는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주간 대부분 시간도 점주가 직접 매장을 관리하고 있다. 인근 또 다른 편의점은 심야시간에 무인으로 운영해 인건비를 ‘0원’으로 만들었다. 무인 점포는 대세다. 카페부터 공부방, 뽑기방, 셀프사진관, 피시방, 아이스크림 가게 등 업종도 다양하다. 이러한 변화는 코로나19를 중심으로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한 결과다. 그중 인건비 부분은 최저임금이 급증한 2016년부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최저임금은 1988년부터 2025년까지 37년간 21배 올랐다. 462.5원에서 시작한 최저임금은 매년 인상됐다. 흐름을 살펴보면, 인상 폭이 컸던 세 번의 파도가 있다.
첫 번째 파도는 제도 도입 직후 4년이다. 462.5원에서 시작한 최저임금은 1989년 전년 대비 29.7% 인상했다. 이는 역대 최대 인상률이다.
이어 1992년까지 매년 15%, 18.8%, 12.8% 인상해 925원에 이르게 됐다. 두 번째 파도는 2001년부터 8년간이다. 2000년 1600원에 머물렀던 최저임금은 2001년 16.6% 인상에 이어 2008년까지 매년 8.3~13.1% 인상돼 2008년 3770원을 기록했다.
세 번째 파도는 2016년부터 2019년까지 4년간이다. 2016년 8.1% 인상돼 6030원을 기록한 최저임금은 이후 매년 7.3%, 16.4%, 10.9% 인상돼 8350원에 이르렀다.
2025년 달성된 최저임금 1만원은 세 번째 파도 당시 목표 수치였다. 2018년 대선 후보자 모두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다만 코로나19 영향으로 목표 달성까지는 7년이 걸렸다. 그 과정에서 자영업자들은 변화하거나 폐업했다.
자영업·노동자도 손해
자영업자, 인건비 부담 증가
작년 빚 1064조 ‘역대 최고’
물가상승률보다 인상률 적어
노동자 “실질임금 삭감 수준”
◇자영업 공화국의 딜레마= 최저임금 인상이 ‘독’이라는 다양한 주장이 있다. 이 가운데 고금리와 고물가 등 경기침체 속 자영업 붕괴를 최소화해 산업구조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현시점에 가장 설득력을 가진다.
우리나라는 ‘자영업 공화국’이다. 1960년대 37%에 달했던 자영업 비율은 작년 19.4%까지 떨어졌다. 그럼에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5%와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편이다.
경제학자들 중에서는 선진국일수록 자영업 비율이 낮기 때문에 비율을 더 낮춰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이를 위해선 자영업 종사자가 임금 노동자로 전환할 수 있는 선구조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악순환의 반복이다.

은퇴한 60대 이상 베이비붐 세대와 희망퇴직을 받아 직장을 나온 50대가 자영업에 도전했다가 실패하고 있다. 그렇게 빚에 빠지고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전한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자영업자 중 50세 이상 비중은 2003년 37.8%에서 2023년 63.7%로 20년 만에 두 배가량 늘었다.
너무 많은 자영업은 레드오션이다. 자영업자들은 경쟁 속에서 각자를 더욱 영세하게 만든다. 통계청에 따르면 연 매출 5000만원 미만 소상공인 비중은 2019년 28.1%에서 2022년 34.6%까지 늘었다. 이 과정에서 채무도 쌓인다. 작년 3분기 말 자영업자 대출은 1064조4000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다.
신영철 경남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최저임금 동결과 업종·지역별 차등적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 회장은 “일인다역을 하고 있는 자영업자에게 상승한 최저임금은 결국 심리적 좌절감만 키우는 계기가 된다”며 “불경기와 고금리 상황에서 많은 자영업자를 빨리 폐업시키는 게 최저임금법 시행 취지는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과 자영업이 다르고 서울과 경남이 다르다”라며 “업종·지역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질임금 3년째 하락= 반대로 1만원대를 넘어 계속해서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의 핵심은 “월급 빼고 다 오른다”에 있다.
물가를 감안해 임금의 실질적 가치를 측정한 실질임금은 2022년부터 작년 상반기까지 2년 반 동안 후퇴했다. 연도별로 2022년 0.2%, 2023년 1.1%, 2024년 상반기 0.4% 감소했다. 고물가 영향으로 작년 하반기와 올해도 전망은 밝지 않다. 노동계가 2025년 최저임금 ‘1만30원’에 불만족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가상승률(2.6%)보다 적은 인상률(1.7%)은 사실상 삭감이라는 시선이다. 이들은 당초 가구 생계비를 기준 삼아 2025년 최저임금을 1만2600원으로 제시했다.

최저임금이 곧 임금 총액인 저임금 노동자들은 그만큼 지갑 사정이 빡빡해졌다. 올해 인상된 최저임금에 영향을 받는 노동자는 301만7000명으로 추정된다. 전체 노동자의 13.7%다.
최희태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 정책국장은 “오른 물가에 비해 현 최저임금은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기 위한 걸로 보면 많이 부족하다”며 “10년 전 요구하던 1만원이 역설적으로 1만원에 머물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동계는 최저임금이 없다면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수년째 똑같은 임금을 받을 거라고 경계한다. 최저임금제 도입 이유도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최 국장은 “최저임금은 말 그대로 노동자가 이 사회에서 온전하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임금”이라며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나라가 임금을 올리지 않아 생활과 노동력을 하향 평준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양보 없는 ‘임금 줄다리기’
경제계 “동결·업종 차등 적용”
노동계 “특수직 등 반영 필요”
올해 결정구조 개편이 핵심
◇올해 최저임금 심의는?=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는 3월 말 시작해 6월께 데드라인으로 두고 총 27명으로 구성된 심의위원회가 논의해 의결한다.
올해는 결정구조 개편 여부가 핵심이다. 지난해 11월 고용노동부가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을 위한 ‘최저임금 제도개선 연구회’를 발족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경제계와 노동계 간의 양보 없는 줄다리기에 한계가 왔다는 의견을 반영한 결과다. 다만 탄핵 정국에서 제도적으로 큰 변화를 주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본격적인 심의에 들어가게 되면 경제계는 최저임금 동결과 업종별 차등 지급 등을, 노동계는 인상과 함께 특고(특수고용직)·플랫폼노동자의 건당 최저임금 반영 등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김용락 기자 rock@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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