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나라하게 벗겨낸 세상의 모순
[책] 호랑말코
‘시단의 메두사’ 김언희 시인 일곱 번째 시집
신체부위·성에 관한 거침없는 표현력 눈길
억압받고 왜곡된 현실 언어유희·역설로 풀어
이번 달 책판에는 김언희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호랑말코’를 주인공으로 정했습니다, 라는 말은 틀렸다. 서둘러 이번 달 책판은 김언희 시집 ‘호랑말코’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라고 고치면서 이 글을 시작한다.
팬심이 없다곤 할 수 없지만 첫 줄에 대해 부연하자면 시집의 뒤표지에 적힌 한 문장에 대한 것이다. 단언컨대 책을 모두 읽고 덮었을 때 매우 이해가 된 문장이기도 하다. ‘이 시집은 독자를 선택할 것이다. 저의 맞수, 저의 짝을.’

책장을 덮은 지금 나는 시인의 맞수가 되었나? 짝은? 확언할 수 있는 것은 만만치 않을 거라 예상했고, 실제 만만치 않았다는 사실이다. 출판사 서평에서 인용된, 2011년 본지와 김언희 시인과의 인터뷰를 재인용하자면 ‘성기와 배설물에 대한 노골적인 언급, 도착적 성행위 묘사, 강도 높은 폭력적 언어 구사로 억압받고 왜곡된 욕망이 배태해 낸 끔찍한 현실을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포착’하며 스스로를 ‘똥 퍼주는 시인’이라 소개하던 시인은 실재한다.
‘입을 항문으로 썼소 하나로는 부족해서// 나는 똥을 먹는 부류가 아니오/ 내가 똥이오// 중독장애, 맞소// 하지만 이 약만큼은 못 끊소 자살 충동에 지속 발기/ 이 취향 저격의 부작용 땜에’ - ‘녹취 A-19’ 중
그를 일컫는 ‘시단의 메두사’라는 별명을 다시 생각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너무나 무시무시해 사람들이 그 얼굴을 보기만 해도 돌로 변해버리게 하는 괴물. 과연, 그의 시를 읽으면서 굳어버리기가 매 순간인데, 그것은 진실이기 때문이다. 진실은 대체로 역겹고 더러운 똥과 같아 사람을 적잖이 당황시키니까.(본지 2011년 7월 8일자 ‘나의 작품을 말한다 : 시단의 메두사 김언희 시인’ 편에서, 김 시인은 “나는 ‘똥 퍼주는 시인’이다. 똥은 거짓말 안 한다. 의식의 똥은 말인데 입으로 나오는 똥은 거짓말을 한다. 가짜 똥도 많다. 그런 똥을 누군가는 치워야 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손에 피를 묻힐 수는 있어도 손에 똥을/ 묻힐 수는 없’어서 쉬쉬하는 것을, 시인은 앞서서 소매를 걷어붙이곤 똥을 치운다. 그는 다섯 번째 시집 ‘보고 싶은 오빠’를 내던 2016년 인터뷰에서 ‘늘 이 악물고 긴장하면서’ 살던 지난 삶을 돌아본 적이 있다. 그중 제일은 여성으로서 겪은 괴로움이었다. 성권력에 있어 열위에 있는 현실. 그러므로 시인은 보다 드러내어 성기와 성행위를 언급하는 것으로 우위를 점했는 지도 모른다. 오랜 세월 성(性)으로 누군가를 눌러오던 당신이 이제 부끄러워할 차례라고.
‘보노보처럼 살면/ 안 될까?// 좋은 아침!/ 섹스하고// 죄송함다!/ 섹스하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수신도 섹스로, 제가도 섹스로/ 치국도 섹스로// 평천하도// 패거리들을 빙 둘러 세운 채/ 우두머리끼리 화끈한 섹스로 뒤끝 없이 해결하는 보노보’ - ‘팬 패니스쿠스 - 보노보의 학명’ 중
그는 기꺼이 똥이 되고, 계속하여 스스로를 죽인다. 똥이 되고 죽어서 세상을, 사람들을 변화시킬 것을 알기에.
‘정어리를 토막쳐 밀복을 낚(밤의 가두리에서)’을 수 있으므로 ‘자살은 매일 해야’ (녹취A-19)하는 것. 그러므로 시인은 ‘대가리를 떼내고 똥을 다 까낸 은멸치처럼’ 죽은 뒷날에는 개운하게 깨어(밤의 방파제)난다.
그가 시를 위해, 세상을 위해 스스로를 얼마나 갉아먹었을지는 감히 상상이 어렵다. ‘무섭소 나도!// 왜 안 무섭겠소’라는 시인은 ‘제 방귀 소리에도 기절하는 풀색 노린재(녹취 A-21)’일 뿐이다. 시인은 고백하기를, ‘시 한편을 쓸 때마다 뒤를 대주는 느낌입니다// 수간을 당하는 개 같(솔직히,)’다.
하지만 이내 시인은 ‘하루살이는 죽는 맛에 또 태어나고 또 태어나’기에 ‘하루살이가 죽는 맛을 끊겠냐/ 개가 똥을/ 끊겠냐// 니가, 시를 끊겠냐(클럽 양파주점에서)’ 자조한다. ‘내가 살아/ 모두가/ 죽는’ 날이 올까봐 시인은 오늘도 ‘불에 구워진 대파처럼/ 나에게서 내가 훌러덩 벗겨져나(성 금요일)’간다.
저자 김언희, 출판 문학과지성사, 120쪽, 가격 1만2000원
김현미 기자 hm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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