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석루] 섬으로 떠나는 봄맞이 여행- 이봉수(이순신전략연구소장)

기사입력 : 2025-03-04 19:14:34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봄이 아니 올 리가 있나. 그 어느 해보다 춥고 지루했던 겨울은 가고 남국의 섬나라에는 동백꽃이 꽃망울을 활짝 터트렸다. 이에 질세라 매화도 피기 시작했다. 혹독한 추위를 견딘 매화 향기가 천지에 그윽하다. 봄볕 가득한 언덕배기에 쑥이 나오면 통영 서호시장엔 도다리쑥국이 향기롭다.

봄은 설렘의 계절이고 생명의 계절이다. 방구석에 박혀 텔레비전만 보고 있기에는 봄 햇살이 너무 찬란하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방랑벽이 올해도 어김없이 도지고 말았다. 이번 주말엔 걸망 하나 메고 토담집 별장이 있는 통영 오곡도로 훌쩍 봄맞이 여행을 떠날 생각이다.

봄은 남국의 섬나라에 제일 먼저 상륙한다. 바다 건너 봄이 물밀듯이 밀려오면 오곡도에는 온갖 생명들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땅속에 숨어 있던 개미와 벌들이 나오고 휘파람새도 후박나무에서 자지러지게 노래한다. 언덕배기 양지 쪽에는 추위를 견딘 자연산 방풍이 새 순을 내밀고, 어촌계장님 댁의 노지 마늘은 피둥피둥 살이 올랐을 것이다.

섬은 고립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대자유가 넘실대는 곳이다. 섬에서 바라보면 육지는 오히려 거대한 포로수용소처럼 보인다. 봄이 오는 오곡도는 생태가 살아있는 원시의 섬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동백꽃 낙화가 오솔길에 붉은 융단을 깐다. 차마 밟고 지나가기 어려워 한참 동안 꽃그늘 속에 앉아 있었던 지난해 봄의 추억이 아련하다.

이순신 장군의 전적지를 답사하기 위해 한산도 인근의 오곡도에 토담집 베이스캠프를 하나 마련한 지가 벌써 20년이 넘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육지로 떠나고 이제 겨우 다섯 가구 정도만 남은 섬이지만 해마다 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선착장에 내리면 염소가 먼발치에서 인사를 하는 오곡도에는 머지않아 처마 밑에 제비가 집을 지을 것이다.

섬으로 떠나는 내 걸망 속에는 언제나 고이 접어 넣어둔 보자기가 하나 들어 있다. 온갖 물건을 생긴 대로 쌀 수 있는 것은 보자기밖에 없다. 어촌계장님이 흙 묻은 풋마늘이라도 한 단 주시면 남국의 봄소식과 함께 보자기에 담아 올 생각이다. 내 마음은 벌써 봄이 오는 섬 오곡도에 가 있다.

이봉수(이순신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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